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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이민 이야기

[미국 이민 이야기] 너는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하니?

by 이방인 J 시카고 2022.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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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방인 J입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바로 제 이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미국에 살면서 이름이 갖는 의미는 참 큰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읽기만 해도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름에는 뿌리와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하나 봅니다. 사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는 어디에 가던 제 이름을 한국어로 적고, 한국어로 불리면서 '이름'에 대해 시간을 갖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면서 제 자랑스러운 한국어 이름이 이상하게 불려질 때마다 속상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최근에 제 한국어 이름과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너는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하니?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하니?" 몇주전,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서 남자 친구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을 만날 일이 생겼습니다. 가서 대화를 하던 중에 남자 친구 어머니께서 물어보셨습니다. 제 영어 이름과 한국 이름 중에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하느냐고요. 저는 자연스럽게 영어 이름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사실 그들을 배려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한국 이름으로 불리기를 늘 원하지만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그 누구도 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준 타인종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치가 없어서였죠. 그러나 대답하고 나서는 조금 후회했습니다.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 아니라면, 노력해서 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주고, 아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

 

이 질문 하나는 제 이름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마치 어릴때 이민 온 아이들이 정체성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겪는 것처럼, 저도 비슷한 것을 겪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내 뿌리를 알고, 지키며 잘 살아보고 싶지만 심지어 주변에서 제 이름을 물어볼 때 영어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고 대답하는 저를 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 마음은 한국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데 말이죠.

 

 

미국에서 한국 회사 다닐 때 내 이름은

 

미국에서 한국회사 다닐때 회사 내부에서는 제 이름에 대한 이슈는 전혀 없었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모두가 당연히 제 한국 이름을 불러주셨기 때문에요. 하지만 저는 신문기자로 일을 했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만 일하지 않고 거의 밖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한인뿐만 아니라 타인종들을 많이 만나서 일을 해야 했고, 그들의 편의상(?) 제 비즈니스 카드에는 영어 이름을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타인종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또한 저를 더 쉽게 기억해줄 것 같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는 이제 미국에 이민을 왔으니까 명함에 영어 이름을 적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되었는데 말이죠. 당시 아주 가끔 취재원들이 제게 한국 이름이 있냐고 물어볼 때만 제 한국 이름을 알려주곤 했었습니다.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지요. 한인 2세 취재원들이라면 모를까 말이죠. 

 

 

미국 병원에서 일하면서 내 이름은

 

미국 병원에서 일하면서 제 이름은 역시 영어 이름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부서에 속해서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 모든 부서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플롯(Float) 직원이기 때문에 가끔 저를 모르는 부서에 가면 제 한국어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물어본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주권에 적힌 제 이름은 한국 이름입니다. 그래서 모든 서류상에는 제 한국어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주 일하러 가는 병동에서는 제 한국 이름이 서류에 적혀있어도 보드에 제 영어 이름을 써둡니다. 그들이 제 영어 이름을 알고 있고, 제가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일하면서 영어 이름을 쓰게 된 계기 역시 타인을 배려해서였고, 동시에 제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는 것이 싫어서였습니다.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제 이름 세 글자 중 마지막 글자를 따서 영어 이름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하와이, 시애틀 유학 시절부터 특정 영어 이름을 계속 써왔기 때문에 바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이 이미 제 영어 이름으로 너무 오랫동안 저를 불러왔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계속 영어 이름을 고집해서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어 이름과 영어 이름으로 각각 불릴 때 장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영어 이름으로 불릴 때는 제가 가끔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일할 때 수월합니다. 책임감을 덜 갖고 일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좀 더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보통 시프트를 시작할 때 "It's show time!"이라고 외치고 일하곤 하는데요, 새로운 자아를 가지고(?) 업무에 임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합니다 :) 

 

처음부터 한국어 이름을 밀고 나갈 걸 그랬다

 

소제목 그대로입니다. "처음부터 한국어 이름을 밀고 나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 다양한 인종이 모여있는 미국에서 살고, 일해나가면서 발음하기 정말 어려운 이름들이 많습니다. 너무 긴 이름들도 많고요. 하지만 그들은 그들 이름대로 불리길 원합니다. 닉네임이 있긴 하지만요. 그럴 때마다 나도 내 자랑스러운 한국어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고 처음부터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영어 이름을 쓴다고 해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병동에서 일할 때, 직원 중 한 명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이름은 폴란드 이름인데 아무도 제대로 발음을 못해줘.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 이름을 정확하게 어떻게 발음할 수 있는지 매일 교육시켜. 지금은 꽤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이 많아졌어"라고요. 병원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직원이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름과 정체성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고, 미국 시민권을 신청할 때 first name을 한국어 이름으로 할지, 아니면 middle name에 한국어를 넣어야 할지 잘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카고에서 이방인 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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