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방인 J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영주권자, 이민 이야기' 카테고리에 글을 써봅니다. 오늘의 주제는 연봉(Salary)이에요. 누구나 다른 사람이 얼마 버는지 궁금할 수 있고, 또 그에 따라서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랬던 것 같아요. 특히 제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 후, 미국에 이민을 오고 나서 첫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너무 적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때가 그랬어요. '내가 연봉을, 월급을 얼마 벌면 좋을까? 삶은 어떻게 변할까? 어떤 변화들이 생길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죠. 당시 영주권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영주권을 받고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된다면 삶이 어떻게 변화될까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오늘은 미국 이민 와서 다녔던 첫 직장에서 3만 불 연봉받던 시절부터 현재 미국 대학 졸업 후 (두 번째 학사) 초봉 12만 불을 받으면서 제 스스로 생각할 때 달라진 점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첫 직장, 연봉 3만불, 영주권 진행 중이던 시절
시카고에 이민을 와서 처음에 한인 회사를 다녔었어요. 저는 다른 직원들처럼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졸업 후 직장을 미국에 잡게 된 경우가 아니에요. 저는 한국에서 학사를 마치고, 회사를 조금 다니다가 좋은 기회로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기회였는지 빛 좋은 개살구였는지. 실속이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후자가 맞는 말이겠네요) 미국에서 직장인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영주권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고, 그저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이 6개월에서 1년 정도 일하고 영주권 수속을 밟길래 저도 자연스럽게 영주권 수속을 밟게 된 케이스였어요. 첫 회사에 큰 애정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일을 했는데, 영주권 수속을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너무 힘들었지요. 대부분 미국에 이민오셔서 첫 직장이 한인 회사일 경우, 이런 경우가 많이 있을 텐데요. 정말 열심히 일해서 정말 운 좋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주권이죠. 정말 모든 것이 알맞은 타이밍에 움직여줘야지 영주권이 너무 고생하지 않고 나온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그래도 회사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 정말 빠르게 받은 편이었답니다. 아무튼, 당시 제 연봉은 3만 불 언저리였어요. 3만을 좀 넘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 나요.
당시, 연봉 3만불을 가지고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700불가량의 렌트비를 내고, 나머지는 식비, 보험비 등에 많이 나갔고, 여행도 아주 가끔씩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감사하게도 시카고에 정착할 때 부모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사실 그 돈 덕분에 연봉 3만 불을 가지고도 매년 미쳐서 날뛰는 미국 물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오자마자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정착할 돈을 가지고 중고차를 2,500불 주고 구매했었어요. 10만 마일 정도 탄 소형 자동차였는데요. 제 업무상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시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차가 필수였습니다. 그리고 대중교통으로는 돌아다닐 수도 없었고요. 정말 감사하게도 그 차 덕분에 사고 없이, 전혀 문제없이 7년 정도를 탔답니다.
이렇게 돈을 적게 벌때, 특히 고생하고 일하는 것에 비해 너무 적게 벌 때, 제정신상태는 말이 아니었어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친구들과 비교를 하게 되고,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절대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버리고(갓 대학을 졸업했을 때라서 이룬 것이 없어서 버릴 것도 없었지만요?) 미국에 와서 열심히 제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저는 오직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봐야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이에요 :) 아무튼 저는 영주권이 빨리 나오기만 기도하고 바라면서, 우는 일도 참 많았고, 일하면서 억울하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분노나 슬픔을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면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서 식사를 하던지, 시카고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해서 맨- 뒷자리에 앉아서 펑펑 울다가 집에 오는 것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영주권이 2년도 안 걸려서 나오자마자, 저는 정말 너무 행복했고, 제 삶을 본격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실천해 나갔습니다. 그 덕분에 미국 주립대 4년을 다시 하고 최근에 졸업까지 했답니다! 제 두 번째 학사였죠.
연봉 12만불, 영주권자, 미국 대학 졸업 후
올해 5월 시카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정말 큰 성취감을 느꼈고,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한 달간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펑펑 놀았지만, 미국 간호사가 되기 위해 쳐야 하는 시험인 엔클렉스(NCLEX)도 한 번에 합격을 하고, 감사하게도 시카고 내 대형병원 중 한 곳에서 잡 오퍼까지 받게 돼서 지금은 갈 곳이 있는 백조로 한 달을 지내고 있답니다. 미국 대학 졸업 후, 제 연봉은 12만 불이 됐는데요. 이유는 제가 의대에서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그 잡과 미국 간호사 잡 연봉을 합치면 최소 12만 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12만 불이라는 액수는 한국 돈으로 바꾸면 1억 6천4백52만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했어요. 미국 처음에 왔을 때 3만 불 연봉에서 현재 12만 불이 됐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한 것에 대해 이제야 제대로 보상을 받기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미국 간호사로 일하는 것이 무척 힘들 것이기 때문에 연봉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요, 의대에서 리서치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수고롭지 않고, PI 교수님도 무척 좋은 분이고 잘 도와주셔서 이 파트타임 잡에서 받는 돈은 합당하다고 생각해요 :)
미국 간호사를 한 것이 돈 때문 만은 아니지만, 제 성격에도 잘 맞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제게 정말 딱인 직업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더 기뻐요. 제 첫번째 학사는 신문방송학이었는데요, 간호학으로 미국에서 다시 대학교를 가서 졸업을 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저는 간호학으로 전공을 한 것,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미국 간호사 연봉은 저처럼 BSN 졸업생인 경우, 시카고에서 초봉이 적게는 7만, 그리고 보통은 8만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서버브의 경우 더 주는 것 같고요. 다운타운 쪽은 연봉이 더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연봉 12만불을 받게 되며, 제 삶에서 참 많은 부분이 변화했는데요. 이제 학교와 일을 병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제 삶에서 더 가치를 두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시카고 노숙자를 돕는 자원봉사를 더 꾸준히 해나갈 수 있게 됐고요, 7년간 타던 중고차를 안전을 위해 새 차로 바꾸었고, 그리고 가정을 꾸려서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침 제가 프러포즈를 받아서 약혼을 하기도 했고요. 물론 제가 예로 든 것들은 모두 연봉을 얼마 받던 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 경우에 제가 돈을 적게 벌 때는 마음,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정말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제 성격상 파트너가 얼마를 벌던, 제 연봉이 적다면 많이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은퇴자금에도 Max로 돈을 넣고, 투자도 하고, 세이브도 하는 등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포기하지 말기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일 하면서 영주권 수속을 밟고 계시는데 연봉이 낮아서 힘드신 분들 뿐만 아니라 제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 미국 대학을 갓 졸업해서 초봉을 12만불 받게 됐지만, 저는 향후 3-5년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 CRNA (마취간호사) 프로그램을 할 생각이 있고, 더 많이 벌어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CRNA 연봉은 200-300k입니다. 일하는 만큼 더 벌 수도 있고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누구든지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계속 수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정말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부디 제 메시지가 이 글을 통해 잘 전달됐길 바랍니다. 제가 지난날들을 돌아봤을 때, 미국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아주 열심히 일하면서 영주권을 받던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이자 어떻게 보면 앞으로도 계속 더 제가 나아가는데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어둡고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다만, 그때 너무 고생을 했었기 때문에, 널싱스쿨 다니면서 아무리 힘들었어도 한인회사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늘 잘 버티고, 극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힘든 경험들은 제가 어떤 것에 도전을 하던 비교대상이 되어주면서 저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어요 :) 목표한 바가 있다면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꼭 이루세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길 바라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카고에서 이방인 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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