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방인 J입니다.
최근 저는 시카고 다운타운에 위치한 코트에 가서 미국 시민권 선서식 (naturalization oath ceremony)을 하고 왔습니다. 집에서 미국 시민권 선서식에 간 제 모습을 상상해 봤을 때는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이 그려졌었어요. 그런데, 직접 시민권 선서식에 가보니 눈물보다는 지금까지 미국에 이민 와서 살면서 힘들었던 기억들, 그리고 나 자신을 보며 다양한 경험들을 토대로 많이 성장한 제 모습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제 곁에서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고,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버티며 커리어를 쌓지도 못했을 것 같고, 인간으로서도 성장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글에서는 시민권 선서식 전날 그리고 시민권 선서식을 하고 나서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한번 나눠보려고 합니다.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에서
뉴욕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익숙한 베이커리죠.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Magnolia Bakery). 시카고 다운타운에도 지점이 있는데요. 몇 해 전 조카 생일 파티하러 뉴욕에 갔을 때 처음 바나나 푸딩을 먹어보고 너무 달아서 놀라고, 너무 맛있어서 놀란 이후 시카고 와서도 한번 더 사 먹은 적이 있었어요. 시민권 선서식 전날, 날씨도 너무 좋고, 일도 안 하는 날이기도 해서 지하철 타고 다운타운으로 혼자 나들이를 갔습니다. 어떻게 이 좋은 날씨를 즐길지 고민을 하다가 에코백에 블랭킷 하나를 둘둘 말아서 넣고, 텀블러, 모자, 선글라스, 지갑, 열쇠만 넣고 출발을 했어요. 이날 정말 오랜만에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의 바나나 푸딩이 너무 먹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미디엄 바나나 푸딩을 하나 사서 먹기 시작했어요.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달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먹고 싶던 바나나 푸딩을 이 좋은 날씨를 누리며 먹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시민권 선서식 전날 혼자 이렇게 바나나 푸딩을 먹고 있으니, 예전에 신문기자로 일 할 때 운전도 미숙한 제가 다운타운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취재하고, 잠도 부족하고, 쉬는 시간도 부족한 상태로 몇 년간 일할 때가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시카고 다운타운 주차장들은 경사가 왜 이렇게 급한지. 취재 장소에 도착해서 취재하는 것은 괜찮은데, 주차가 제일 무서웠었습니다. 가격이 저렴한 주차장들을 찾느라고 경사가 가파른 주차장들에 주차를 많이 했었거든요. 그때 서버브에서 다운타운으로 참 많이 왔다 갔다 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추억에 젖었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를 되돌아보면서 '참 많이 성장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문기자라는 직업에서 간호사로 직업을 바꾸고, 그 과정 속에서, 그리고 결과 속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거든요. 당시 제가 바꾸고 싶었던 부분들이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이 들어서 기뻤습니다. 아무튼, 푸딩을 반쯤 먹은 후에 리버 워크로 출발을 했어요. 아참, 가기 전에 할랄 가이즈에 들러서 음식도 사갔습니다.
아까 흘리려다만 눈물을 제대로 흘려보자는 생각으로 시카고 리버 워크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걸을 때는 몰랐는데, 리버웍 왼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잔디밭이 있고, 알록달록한 의자들이 놓여있는 곳이 있어요. 시카고 리버도 바라볼 수 있고, 햇빛을 받으며 잔디 위에 누워있을 수도, 앉아있을 수도 있는 곳이랍니다. 저는 블랭킷을 챙겨갔기 때문에 잔디에 편안하게 앉을 수 있었어요. 시카고 강을 바라보면서 바나나 푸딩도 먹고, 투고해 온 할랄 가이즈 플래터도 먹으면서 여유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음 날 있을 시민권 선서식에 앞서 미국에 이민 와서 고생한 제 자신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앞으로 더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자고 말해주었습니다.
내 시민권 선서식 위해 온 가족 출동
약혼자 마이클과 그의 부모님, 두 살 된 조카까지 이렇게 다 같이 다운타운으로 향했습니다. Perilla라는 한국식 레스토랑이 무척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코트 근처에 있어서 가서 브런치를 먹고 코트로 갔어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식사하기 전에 리버 워크도 걸었고요. 전날 혼자서 리버워크도 걷고, 여유를 즐겼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가족들이랑 함께 걸어 다니니 더 즐겁고 재미가 있었어요. 만약 혼자서 시민권 선서를 하러 다운타운에 왔어야 했다면 혼자서 괜히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긴장감이 들었을 텐데, 가족들과 있기도 했고 두 살 된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웃기 바빴습니다. Perilla 레스토랑은 한국에 있다는 호텔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습니다. 내부는 정말 깔끔하고, 인테리어가 너무 세련되서 마음에 쏙 들었어요. 저희 가족은 11시에 문 열자마자 들어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시민권 선서식이 12시 15분에 예정돼 있어서 한 시간 정도 식사를 하고 출발을 했어요. 저는 설렁탕을 주문했는데요. 짭짤하니 간이 딱 좋았어요. 고기도 무척 부드럽고, 국물이 정말 끝내줬습니다. 다만, 여기서 조금만 더 짰으면 저는 한입도 더 못 먹을 뻔했습니다. 짭짤한 맛과 짠맛의 경계에 있었어요 하하. 같이 나온 반찬들도 정말 맛있어요. 김치는 직접 담근 맛이 팍팍 났답니다. 그리고 나물 반찬이 있었는데, 이름은 모르지만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어요. 여담이지만 신문기자로 일할 시절에 Perilla의 executive chef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셰프와 그의 형제 둘이서 그때 주정부 빌딩 푸드코트에서 City Rock이라는 한국식 포케집을 운영했었거든요. 한인 2세들이 하는 레스토랑이기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주변에 서로 아는 분들이 연결을 시켜주셔서 레스토랑에 몇 번 가서 밥도 먹고, 인터뷰를 해서 기사도 냈었답니다. 두 형제는 성격이 무척 달랐는데, 둘 다 꽤 과묵했지만 동생이 좀 더 활발했던 것 같아요. 아무튼 탐슨센터 취재가 있을 때마다 city rock에 들러서 인사도 하고, 밥도 먹곤 했었어요.
드디어, 시민권 선서식을 하러 코트에 도착. 소지품 검사도 하고, 탐지기도 지나고, 신분증 보여주고 모두 엘리베이터 타고 선서식 하는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니 세상에나, 줄이 너무 길었어요. 시민권 선서식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줄 서서 판사나 직원하고 인사하고 Certificate of Naturalization을 받아오는 것인가 하고 생각을 했어요. 한 20분쯤 기다려 제 차례가 왔는데요, 직원이 제가 가져온 인터뷰 통지서를 가져가서 읽고, 선서식장 안으로 들어가서 영주권 반납을 하고, 앉아서 선서식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코트 룸 안으로 들어가서 또 줄을 서서 직원에게 제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영주권을 반납하고 자리에 앉았어요. 가족들에게는 문자로 몇 시에 선서식이 있으니 그때 들어올 수 있다고도 얘기해 줬습니다. 자리에서 앉아서 기다리는데,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종이가 있었고, 선서식 때 읽어야 할 것들, 성조기 등등이 자리에 놓여있었어요. 한참 기다려서 드디어 선서식, 인도계 미국인 판사가 코트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민자의 아들이며, 몇십 년 전에 아버지가 미국에 와서 미국 시민권을 따기 위해 코트에 왔었다며, 아버지 덕분에 가족들이 잘 정착을 해서 자신은 지금 미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 그리고 문화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살려서 미국에서 미국인으로서 권리를 누리고, 책임을 다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고,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시민권 선서식이 끝나고 Certificate of Naturalization과 이름 변경서를 받아 들고 코트룸을 나갔어요. 가족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다 같이 지하철을 타고 룰루랄라 집으로 왔습니다.
저는 시민권을 받는 동시에 이름을 변경했기 때문에 SSN, 운전면허증, bank, credit card 회사 등등 연락해야 할 곳이 무척 많아요. 가장 먼저 미국 여권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혹시 여름에 한국에 방문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제 한국 여권을 더 이상 쓸 수가 없으니 미국 여권을 하루빨리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이민 오고 나서 늘 겨울 방학, 겨울 휴가 때만 한국을 방문했기에 아름다운 한국의 여름에 대한 기억이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있기도 하고요. 약혼자가 아직 제 아버지를 못 만났기에 결혼식 전에는 꼭 소개를 시켜야 하므로 함께 방문하고 싶습니다. 현재 리서치 널스 잡 인터뷰 결과들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언제 갈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지만, 2주 내에는 결과가 나와서 현재 일하는 직장에는 2주 노티스를 주고, 새로운 잡 시작 전까지 피앙세와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입니다 :)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시민권 선서식 때 판사가 얘기한 것처럼 제 문화와 뿌리를 사랑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한국인이라는 뿌리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여전히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을 좋아하며, 더욱 행복하게 마이클, 그리고 보미와 함께 미국에서 살아갈 예정입니다!
국적을 바꾸는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제게 일어났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의 고향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조금 무섭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드는 중입니다. 그동안 미국 이민 와서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래도 난 한국 사람이고, 내가 원하면 한국에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요.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제가 사는 나라이자 제가 속한 국가라고 생각하니, 믿는 구석이 하나 없어진 것 같아서 허전한 마음이 가끔 듭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잘 살아갈 수 있겠죠? 앞으로도 더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글들을 많이 써갈 테니, 많이 들러주세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시카고에서 이방인 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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